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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에게 주는 글(자기발전을 어떻게 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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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1건 조회 2,479회 작성일 21-01-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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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에게 주는 글: 자기발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곽 수 근 (서울대 명예교수, TSMI 의장)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중학교 시절의 내가 당황했던 한 순간은 어느 날 아침 나의 목에서 어른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몇 년 사이에 겪은 신체적인 변화로 우리는 성숙한 인간이 된 듯한 착각에 쉽게 빠진다. 그러나 우리는 목소리가 변하듯 하루아침에 정신적인 성장을 이룰 수는 없다. 아마도 우리가 땅에 묻힐 때까지 우리의 정신세계는 끊임없이 변할 것이다.

 

신체적으로는 성장이 완료되었으나 정신적인 성숙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평생 동안 키울 나무의 줄기를 바로잡고 거름을 만드는 것과 같은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작업이 대학생활 중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 또는 군대생활을 하든 TV나 보면서 허송세월을 하든 4년이라는 기간 사이에 우리는 어느 정도 정신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생활이 달리 보내는 4년과 낭만적인 추억 외에는 별다른 차이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면 대학생활이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일이 아닐까? 대학은 우리들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시간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시간과 기회를 이용하여 대학생활 속에서 어떻게 자기발전을 할 것인가? 지식과 지혜라는 상호보완적인 두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이러한 문제에 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지식은 모든 사람들이 대학에서 당연히 얻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지식을 얻을 것인가? 지식이란 복잡한 세상의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문제들을 가급적으로 단순화, 일반화시켜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뒤집어 이야기 하면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는 목적은 복잡한 세상의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은 대학이 아니더라도 학원에서의 수강을 통해서, 아니면 단순히 독서에 의해서도 필요에 따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대학에서 얻어야 할 지식은 학기말시험을 위해 하루 이틀의 밤샘공부로 암기된 지식이 아니며 퍼즐과 같은 것의 해답을 찾는 방법도 아니다.

 

세상의 일들이란 매우 다양하고 부단히 변화해 가고 있으므로 우리가 어떤 특정의 경우를 위한 지식을 얻기 위해 모든 시간을 쓴다면 다른 일에 또는 변화에 대처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대학에서 얻어야 할 지식은 문제의 해결 방안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건전한 상식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식들은 낱알과 같이 흩어져 있는 지식이 아니다. 한 조각의 지식은 세상의 한 부분만을 설명해주고 있으므로 부분에 의해 전체를 볼 때 그릇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 또한 지식은 그 용도에 따라 그 유용성이 상이해진다. 만병통치약이 있을 수 없듯이 일에 따라 요구되는 지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기본적인 지식에 충실하고 별개로 보이는 지식들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고 그 지식들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하여야 우리가 얻은 지식이 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은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떠한 사고방식이 도움이 되는가를 가르쳐 준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인간이 되라’, ‘인간대학을 나와라라고 하며 대학을 인격도야를 위한 장소라고도 한다. 이는 지식은 필요에 따라 얻을 수 있으며 그 이용목적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므로 지식 그 자체보다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자신은 100%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조직을 꾸미고 사회를 형성하는 까닭은 우리 개개인의 능력이 한계가 있고 완성된 인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이외의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사는 인간사회에서 어떻게 행동할 때 나의 지식을 가장 잘 활용하고 나의 뜻을 성취할 것인가? 대학생활에서 완전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한 생각을 인생에서 대학에서 보다 더 많이 할 시절은 없을 것이다.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삶의 목표와 행동기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중요하면서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삶의 목표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두어야 할 것이다. 멀리 보이는 산정을 목표로 하여 등산을 할 경우에 계곡을 타고 올라가든 능선을 타고 올라가든지 곧바로 가든지 돌아서 가든지 쉬어가든지 계속 가든지 간에 목표가 길을 저절로 열어 줄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각이 변하듯 목표 자체도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급적 지금 옳다고 생각되고 미래에도 역시 옳을 것으로 믿어지는 포괄적으로 삶 전체를 거는 목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 공인회계사, 부자와 같은 어떤 것이 되겠다는 것으로 목표를 설정한다면 쉽게 바뀔 수 있으며 삶 자체를 너무 간단하고 단견적으로 보는 것일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자기 행위의 지침이 되는 것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일 것이며 무엇이 된다는 것은 이에 대한 도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 목표는 개인의 성장 배경과 이로부터 형성된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며 구체화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해하며 살고 있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의 불확실성으로 불안해한다. 어떤 사건이 과거에 규칙적으로 나타났을 때 우리가 그 사건의 미래발생에 대해서도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사람의 행동도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을 보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바로 믿음을 의미한다. 변덕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은 그의 행동이 일관성이 없어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일관성이 있다는 것은 남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뚜렷한 행동의 기준이 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취하는 행동의 기준에 따라서 남의 힘을 모을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어떤 사람이 모든 일을 자기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해 나간다고 할 때 우리는 쉽게 미래에도 이기적으로 문제를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반드시 남과 함께 사는 인간사회에서는 언제나 남과의 이음새가 있게 마련이므로 다른 사람의 이익과의 마찰이 나타날 것이다. 보다 합리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이익을 추구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의 개념은 자기이익의 양보에서 얻어질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비합리적인 면이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보다 합리적인 면을 갖고 있다. 자기이익과 남의 이익을 가르려고 할 때 갈등이 생긴다. 규정과 규칙이 존재하겠지만 남과 함께 살아가는 속에서는 단기적인 자기이익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 남의 이익을 장기적으로 도모하는 것이 더 큰 결실을 얻지 않을까 한다.

 

사회생활은 끊임없이 서로를 판단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을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불완전하고 위험한 것이다. 우리는 자기가 되고자 하는 이상이나 자기가 완벽한 사람이라고 믿어 자기 자신을 비교의 기준으로 타인의 행위를 평가하기 쉽다. 이러한 경우에는 타인의 단점이나 과오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비해 타인의 장점이나 업적은 과소평가되게 마련이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부드럽게 대하고 융통성이 있으면서 남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하는 편견을 갖게 되기 쉽다. 우리는 이제까지 보다 완벽한 인간이 되도록 끊임없이 교육받아 왔으나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서는 별로 많은 생각을 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인간은 아무리 완전하려고 해도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인간사회란 이러한 부족한 인간들이 상부상조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을 판단할 기준을 찾아내기 보다는 타인의 행위의 장점은 물론 단점으로부터도 우리의 부족한 점을 메꿀 수 있는 것을 얻으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수신서를 헤어지도록 읽었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바람직한 인간으로 변화될까? 오히려 수신서의 훌륭한 구절들은 우리가 평소 느끼던 바를 주옥같은 말로써 확인시켜 주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수용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주옥 같은 구절들이라도 가슴에 와 닿지 않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수신서 아니면 모든 책에서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남들을 많이 접촉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의 위치를 벗어난 후에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시행착오는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대학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시험해보고 되고자 하는 바대로 노력해보는 사회의 실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판단에서의 자기발전에 있어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 하나는 전문지식의 습득일 것이다. 대학은 세상이 복잡화됨에 따라 각기 영역에서 필요한 전문인을 양성하기 위해서 전문지식을 제공한다. 전문지식은 남과 나를 구별시켜주는 것으로 우리의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전문영역을 선택할 것인가는 다양한 가능성에 접해본 후 자기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는 몇 년 동안의 노력으로는 결코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학의 4년은 전문인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분야의 전문인이 될 것인가를 결정할 기회를 주고 훌륭한 전문인이 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준다고 할 수 있다.  끝.

댓글목록

강준님의 댓글

강준 작성일

대학생은 물론 누구에게나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